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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한 일/읽어본'에 해당되는 글 7

  1. 2008.03.24 [ 책 ] 지식ⓔ season 1
  2. 2007.11.18 [cine] 色, 戒3
  3. 2007.10.28 [ 책 ] 행복의 건축 - Alain de Botton
  4. 2007.03.24 [Book] 쾌도난마 한국경제
  5. 2007.03.24 [Book] Teaching photography
  6. 2007.01.21 [Book]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7. 2006.06.20 [Book] 1984
2008. 3. 24. 00:57 이제까지 한 일/읽어본
예전에는 EBS가 채널 13번 이었고, 기타 공중파들은 5,7,9,11 이 정도 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넘기더라도 EBS가 걸리는 경우는 잘 없었다. 일부러 어떤 프로그램을 보려고 했다거나, 실수로 숫자를 누르지 않는 이상 말이다.
당시에 일부러 보려고 했던 프로그램도 거의 없었다. 가끔 우연히 보았던 독립영화관이 EBS였던가.. 그것도 가물가물하다. 한국방송같기도 하고..

그런데 여기와서는 11번이 MBC고, 13번이 SBS인데(인가?), 그 사이 12번이 EBS채널이다.
다른 방송채널 사이에 홈쇼핑이 끼어 있는데 여긴 EBS가 끼어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끼어있는 채널이었다. (요즘 티비도 잘 안 보지만-_-)

그런데 우연히 보게된-형이 보고 있어서?- 방송이 눈길을 확 끌었고, 그 책 또한 형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단 5분.

방송은 얽힌 사연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나가면서 나를 이해해주세요 라고 호소하지도 않고,
애써 사실처럼 꾸며담지도 않는다. 단 5분간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름다운, 아니 어쩌면 슬플지도 모르는 영상과 함께 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지식들이 어쩌면 단지 정보의 홍수속에 넘쳐 흘러내린 파편은 아니었는지,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가 내가 믿고 싶은것만 믿게 되어버린건 아닌지,
생각해보고..

언론은 언제나 진실일 수 없다는 것을,
그늘에서는 항상 소외받은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말하게 해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반대쪽의 일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해주고,
주변에서 쉬이 지나칠 수 있는 사회에 만연한 현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해주고,
힘없는 소수의 권리를 대변해주고,
한편의 아름다운 감동을 전해주는..
그런 책이었다.


말장난과 욕지거리가 난무하고,
자극적인 언행과 말초적인 자극만으로 경쟁하는 타방송사와 다르게
진정한 공영방송의 모습을 보여주는 EBS에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지식채널 하나를 첨부한다.
단 5분만 시간내서 보시길 ^^





다른 영상은 EBS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http://www.hangaram.co.kr/~j2348sh/ch-e/htm/ch-e.htm
posted by 이것저것
2007. 11. 18. 18:49 이제까지 한 일/읽어본
시대의 요구에 의해서 자신을 포기한 이의 삶.
개인의 자그마한 소망을 접어둔 채 대의를 위해서 희생하게 된 한 여인의 삶.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그녀를 이용하는 남자들,
한 여자로써 그녀를 지켜준다는 한 마디에 눈물 흘릴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슬픔.

슬프고도 아름다운 영화였다.
posted by 이것저것
2007. 10. 28. 01:15 이제까지 한 일/읽어본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접하더라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처음보는 물건(이를테면 나만의 자동차 같은거?)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에 대해서 주저리 주저리 서술하기보다는 먼저 그것이 어떻게 생긴 것이고,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그러고는 내가 발견한 사실들만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알랭드 보통은 그런 능력을 가진 것 같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서라도 자신만의 입담으로 생각을 풀어나간다. 전혀 장황하지 않으면서, 너무 말초적이지도 않다. 그의 생각을 털실을 풀어내듯이, 그래서 조금씩 옷이 만들어지는 것이 보이듯이 내용이 구성되어 간다. 그리고 그 풀어내는 과정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그만의 어투로 계속된다.

처음에는 건축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그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가졌으나 읽어나가는 동안, 단순히 건축물에 대해, 그 역사와 양식을 읊어가는 것이 아니라 각각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사회상과 연관을 짓는 과정이 참 흥미롭다.

이제 그의 책을 선택할 때는 적어도 지루하고 재미없지 않을까? 라는 질문은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사실 인용하고 싶은 구절이 있었는데, 어딘지 잃어버렸다. -_ㅠ;
posted by 이것저것
2007. 3. 24. 17:35 이제까지 한 일/읽어본
최근 신자유주의의 열풍에 관련 서적을 읽어보겠노라고 생각하고 빌렸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별로 재미없음을 겨우겨우 이겨내고 접하게 된 책.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은 post 또는 new Keynesian 이 주류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건지.. Keynesian의 기본은 fine-tuning 아닌가? 시장의 불완전성을 의식하고 정부가 적극적(혹은 보다 덜 적극적일지라도) 으로 경기를 제어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케인지언의 기본이었던거 같은데..
미국의 공세에서 계속되는 우리나라의 행보는 마치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무리들을 추종하는 듯 하다.

그토록 '완전'하다고 주장하는 시장이라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다들 국가가 개입하면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왜 하게 되는지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사실 시장이라는게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되는데, 무슨 배짱인지...
강자를 위한 합리성이지.

또한 현정부에 대한 막연한 지지를 보내고 있던 나에게, 여러 분야에 따른 그들의 정책노선을 다시 점검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책에서 주장하길 복지, 노동, 외교 문제 등은 진보적이나,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너무나 보수적이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이 너무나 입에 익숙해져서, 자유주의=민주주의라고 자연스레 인식하게 되는데 애초에 자유와 민주는 공존하기 힘든 것이라는. 둘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목표인 것이지 하나를 선택한다고 다른 하나가 자연스레 따라 오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등떠밀려서 '자유'를 수호하려고 하게 되면, 어두운 곳에서 '민주'라는 이념이 비틀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강추!


ps: 나중에 유학을 가게 되면 유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더해주게 한 책.

추가. 하지만 대세는 여전히 미국 ㅎㅎ;


2006.7.28.
posted by 이것저것
2007. 3. 24. 17:32 이제까지 한 일/읽어본
by Philip Perkis



Content, Context, Influence


과거의 사진가들, 화가들, 작가들이 내 사진에 영향을 미친다. 유전인자, 몸, 사고력, 심지어 별자리조차 내 사진에 영향을 미친다. 어렸을 때 받은 교육, 청년시절에 경험한 문화와 현재의 문화도 분명 내 사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다. 내가 가진 경제력, 사회에서 맺는 관계들, 마음의 상태, 정신적인 것에 대한 갈망,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 역시 내 사진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에 대한 나의 소신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내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은 결국 내가 이 빌어먹을 것들의 정체를 죄다 알아내지 못하리라는 걸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중략>

지금까지의 논의를 유럽 제국주의의 행태, 특히 백인남성들이 영적인 소통 혹은 비의(秘儀)로 전수되는 것들을 다른 사회로부터 도용하여 자신들의 영욕과 돈벌이에 이용하는 데 대한 불평 정도로 간단히 치부하며 은근슬쩍 넘어갈 수도 있다.

이렇게 골치 아픈 문제의 논리적인 해결 방법은 모든 것을 원래 있던 그자리에 가만 놔두고 서로 다른 문화끼리는 아예 소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세계가 돌아가는 형국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일이 돌아가진 않는다. 모든 일이 되어가는 형편은 그보다 더 복잡하고 흥미롭다.


.......


숙제



예술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당신은 왜 예술 창작을 하는가?

왜 어떤 행위들(회화나 음악)은 예술로 여겨지고, 어떤 행위들(기계공학, 사회학)은 그렇지 않은가?

'순수' 예술과 '상업'이나 '응용'예술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살아있는 예술가들 가운데 친밀감을 느끼는 작가는 누구인가?

죽은 예술가들 가운데 친밀감을 느끼는 작가는 누구인가?

예술작업을 할 때, '재능'은 어떤 기능을 하는가?

예술과 정치, 경제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예술과 종교(영)의 세계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예술과 자연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2006. 5. 18.
posted by 이것저것
2007. 1. 21. 16:57 이제까지 한 일/읽어본
제목부터 화려하지 않은가?
'상실의 시대 (Norwegian Wood)'를 읽고 하루끼에 대해서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나의 반응에 형석이가 추천해준 책.


1984년도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베르나르의 '개미'에서 볼 수 있는 구성의 탄탄함. 화려하면서 쓸쓸한 언어. 하루끼 특유의 자아에 대한 고찰.
모든 것이 뇌리에 깊이 남은 책이다.


자아의 육체라는 커다란 '벽'을 두고(또는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꿈 사이의 커다란 벽), 외부 세상은 그야말로 hard-boiled wonderland 다. 계산사와 기호사라는 전문화된 직업.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세상에서 '나'는 그냥 그런 삶을 살아간다. 다만 현실에 아직 희망이 있다면 아직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 하지만 사별?한 '나' 가 겪는 사랑 또한 그야말로 이상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한편 '나'의 내부에서는 커다란 벽에 둘러쌓인 '비감정'의 세계 - 세계의 끝 - 에서 또 다른 '나' 가 살아가고 있다. 원더랜드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나'의 내면은 일각수의 두개골에서 빠져나가는 꿈처럼 차츰 감정을 상실해가고 있다. 이 곳은 너무나도 평화롭다. 이상하리만치 말이다.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다. 심지어 그것이 아무런 의미(사회적으로)가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다만 하나, 자신의 그림자를 떼어낸다면 말이다.

항상 따라다니는 그림자를 작가는 감정을 가진 개체로 묘사한다. 실제로 떼어낼 수 없지만, 그것을 떼어냄으로서 감정의 분리를 묘사한다. 자아가 행동함에 따라 그대로 반응을 보여주는 그림자는, 개인의 행동을 여과없이 드러내주는 '감정'을 의미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평면에 투영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행동을 하는지 상대방의 오해를 사기도 하고, 느끼고 움직이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때론 솔직한 감정. 이것이 자신에게서 사라진다는 것. 평화, 평온을 의미하는 것일까. 작가는 묻고 있다.


사실 작가가 나눠놓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그 그대로일 수도 있지만, 서로 반대를 가리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나치리만큼 냉철하고 이상한 내면세계를 가진 '나' 가 세계의 끝이라 생각되는 이상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
어느 쪽이 세계의 끝이고, 어느 쪽이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구분마저 모호해지는 곳.


도서관에서 빌려서 봤는데, 네이버에서 보니 두권 사도 만원 갓 넘는군.

강추다.
posted by 이것저것
2006. 6. 20. 17:34 이제까지 한 일/읽어본
짝짝짝.

너무나도 잘 만들어진 디스토피아(distopia)

우리에게 허용된건 아무것도 없다. 침대위의 게으름도, 배부름도, 여유도, 사랑도.
항상 감시받는 사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내 아이조차도.

그리고 사실(fact)은 없다. 사람들의 믿음에 의해 형성된 대상을 지각하는데,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사실이 사실이라고 믿는건 자신들만의 착각일 뿐이다. 그것들이 무엇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 2+2가 5라고 모든 사람이 믿으면 그것은 사실이 된다. (믿는 척 하는게 아니라 정말 믿으면)

개인은 단지 조직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회.

소름끼치는 결과다.


근데 한편 개인은 사회에 적응하기 나름이라는 생각도 든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어지고 그러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즉 그런 것들을 원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호소해도 그건 쇠귀에 경읽기 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신발을 신을 때 오른쪽부터 신는 것이 좋고, 밥을 먹을 때 반찬을 먼저 먹는 것이 더 좋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그걸 인식하지 못한 나에게는 단지 '고민거리' 만 늘어날 뿐이다.

뭐 고대 사람들에게 평등을 아무리 외쳐봤자 위대하신 '폐하'를 기만하는 행위일 뿐이지 뭐.


뭐 그런 의미에서 현재 또한 생각하기엔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겠지.
자본에 의해 기만되는 개인의 인권,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받는 약소국, 돈때문에 죽이고 죽는 사회.
그렇지만 다들 자유와 평등이 있어서 좋은 사회라고 하잖아. ㅎㅎ

요즘 우리나라 보면 조금만 튀면 바로 인터넷에 올라올 정도로 감시받고 있고, 개인에게 자유가 있다고는 하나 대세(유행)를 따르지 않으면 뭔가 도태된 듯 하고, 평등하다고 하나 다 '돈'에 의해 차별된 세상이라고 하고, 그나마 허락된 사랑은 돈에 의해 쾌락에 의해 포장되고.



이건 조지오웰이 명을 달리하기 2년 전에 병마와 싸우면서 쓴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결말조차 우울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다. 완벽한 디스토피아.



2006.6.20.
posted by 이것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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