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정리+분석/keep in mind

[poet] 이해인님 시 몇 편

이것저것 2007. 2. 13. 11:30
 
 
어떤 기도

                                            이 해 인

적어도 하루에
여섯 번은 감사하자고
예쁜 공책에 적었다

하늘을 보는 것
바다를 보는 것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기쁨이라고
그래서 새롭게
노래하자고.....

먼 길을 함께 갈 벗이 있음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기쁜 일이 있으면  
기뻐서 감사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슬픔 중에도 감사하자고
그러면 다시 새 힘이 생긴다고
내 마음의 공책에
오늘도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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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편지  -대모님께

                                                   이 해 인
 


"눈은 볼수록 만족지 않고
귀는 들을수록 부족을 느낀다"는
책 속의 말을
요즘은 더 자주 기억합니다

진정
눈과 귀를
깨끗하게 지키며
절제 있는 삶을 살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시대 탓을 해야 할까요

집착을 버릴수록 맑아지고
욕심을 버릴수록 자유로움을
모르지 않으면서
왜 스스로를
하찮은 것에 옭아매는지
왜 그토록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말하려고 하는지
오늘은 숲속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또 생가했습니다
하늘에 떠 다니는 흰구름처럼
단순하고 부드럽고
자유로운 삶을 그리워했습니다
저도 그분의 흰구름이 되도록
꼭 기도해주십시오, 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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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하는 날 - 이해인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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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는 말 - 이해인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 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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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엽서 - 이해인
 
 
또 한해가 가 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해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남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합니다.

같은 잘못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엔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로 행복할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